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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20515_집중투자와 분산투자, 그리고 실사
  2. 220530_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이유

220515_집중투자와 분산투자, 그리고 실사

지식과 공부/사모시장 이야기

인터넷상의 슈퍼개미나 투자 전문가들 중에는 본인이 집중투자를 통해 지금의 부를 일궈낼 수 있었다며 집중투자를 권하는 사람들이 많다. 틀린 말은 아니다. 수익 수준이 다른 여러 자산에 돈을 쭉 깔아놓는 것보다 가장 수익이 좋을만한 자산에 집중하여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 제고에는 훨씬 좋기 때문이다. 워렌 버핏 등 투자자금의 규모 대비 집중된 포지션을 가져가는 투자자들의 사례가 그 예시로 등장하기도 한다. 보라. 이런 위대한 투자자들도 집중투자를 하지 않냐.

그러나 모두가 알다시피, 집중투자를 하는 경우 전체 투자금의 리스크가 소수의 포지션에 집중되므로 단일 투자건의 리스크에 대한 노출도가 과도해진다는 문제점이 있다. 요컨대, 투자 한 건이 깨지면 포트폴리오 전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집중투자를 강조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이런 위험을 모르지는 않는다. 이들은 소수의 기업에 집중 투자하되 해당 기업에 대해 면밀히 공부함으로써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뉘앙스 상으로는 '줄이면 된다'고 하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접근법에 좀 회의적이다. 물론, 회사와 비즈니스, 시장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내가 직면하는 리스크를 낮추는 게 가능하긴 하다. 애초에 이렇게 리스크를 낮춰가는게 내 일이라고 쓴 적도 있다. (https://m.blog.naver.com/kalay1/222469685211)

하지만 개인투자자들이 과연 집중투자를 하기에 충분한 수준까지 리스크를 낮추는 게 가능할까? 이 부분이 내가 의문을 가지는 포인트다.

금융 회사, 특히 PE에서 어떤 회사에 대한 투자를 검토한다고 가정해 보자. 투자 규모나 회사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통상적으로 3개~7,8개 측면에 대해 전문 자문사가 몇 주에서 몇 달까지 달라붙어 실사를 진행한다. 가장 기본적인 3개는 아래와 같다.

CDD: 주로 전략 컨설팅펌에서 진행하며 시장 성장성과 회사의 비즈니스 분석 등을 통해 회사 사업의 성장 가능성을 분석
FDD: 회계법인에서 진행하며 회사의 Earning의 일회성 또는 지속가능성, FS 각 계정의 적합한 분류 여부, 실제 자산보유 현황과 BS 대사 등 재무제표의 정합성을 분석
LDD: 법무법인에서 진행하며 회사의 사업과 관련된 규제,   소송, 법적 사항 등을 분석

이거 하나하나에 몇 주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며, 수천~수억에 달하는 돈이 들어간다. 이외에도 프로젝트 크기나 투자의 성격에 따라 세무에 대한 실사, 회사 보유 기술이나 IP에 대한 실사, 회사의 경영진에 대한 실사(이거 맡기면 SNS까지 까준다!), 회사의 ESG 운영상황에 대한 실사, 회사와 관련된 규제 및 정책동향에 대한 실사, 회사의 밸류체인에 관한 실사 등 다양한 관점에서 실사를 진행한다.

이뿐 아니라, 투자자 자체적으로도 회사에 대한 분석을 진행하고, 다양한 이들에게 레퍼런스 체크를 하며, 경영진을 포함한 임직원과 몇 차례에 걸친 미팅을 한다. 공장이 있으면 당연히 공장도 직접 가 보고, 생산라인은 효율적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단시일 내에 대수선이나 수선이 필요한지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도 한다. 리테일인 경우에는 미스터리 쇼퍼를 고용하여 고객 입장에서 서비스를 이용해보는 것이 실사 방법 중 하나로 활용된다.

이 난리를 치고도 깨질 때는 깨진다. 코로나 19처럼 예상치 못한 글로벌 위기가 올 때는 말할 것도 없고, 개별 기업의 고유한 이유 때문에도 사정없이 깨진다. 경쟁사가 갑자기 신기술을 개발했더라, 시장의 트렌드가 바뀌어 고객이 전부 다른 채널로 이동했더라 하는 건 그나마 좀 그럴싸한 이유고, 어느 지점 직원이 사고를 쳐서 브랜드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어난다든지, 근 50년을 아무 문제 없이 쓰던 성분이 사실 암을 유발한다는 게 밝혀진다든지, 핵심 고객사 회장의 친족이 갑자기 동일한 업에 뛰어들어 물량을 다 빼앗아간다든지 하는 이유에 이르면 웃음도 안 나올 정도다.

그래서,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개별 투자건에 대한 저 모든 실사에도 불구하고 또 분산을 통해 위험을 완화시키고자 한다. 못해도 5~6개, 극단적으로 많은 경우는 100개 이상을 편입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는 20개 내외가 일반적이다. 단순히 투자 개수를 분산할 뿐 아니라 지역, 섹터, 투자시기(Vintage)를 모두 고려하여 분산한다. 저 난리를 치고 실사를 해 놔도 언제 어떻게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는걸 알기 때문이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보자. 슈퍼개미들의 조언을 듣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상장주식에 투자하는 개인투자자일 것이다. 이들이 회사에 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채널은 제한적이다. Dart나 애널리스트 리포트, 좀 더 나가면 방문 IR이나 IR Call 정도가 있을 수 있겠다. 운이 좋으면 현직자 한둘을 만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을 테고,  운이 좋다면 우리 회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회사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투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정도 리서치를 통해 집중투자가 가능할만큼 리스크를 제한해낼 수 있을까? 더 많은 자금을 운용하는 전문가들이 수억을 들여 실사를 하고도 수없이 망해나가고, 혹시 파악해내지 못한 리스크가 있을까 분산을 하는데 말이다.

한편으로, 대부분의 슈퍼개미들이 집중투자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것은 생존편향의 한 사례일 수 있다. 주식시장의 변동성과 테일 리스크의 무작위함을 감안하면 집중투자했다가 망하는 사람이 더 많을텐데, 그런 사람들이야 어디 나와서 얘기할만한 상황이 아닐테니 집중투자해서 성공한 사람들 목소리가 과잉대표되는 경향이 있는 것도 같다.

220530_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이유

지식과 공부

  했제충같은 짓을 좀 하자면...나는 컬리 안티였다. 요새 삐걱거리니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컬리의 사업 전반기인 몇년전부터 그랬다. 술자리에서 주로 했던 얘기라 인증은 못하지만 그만큼 술자리에서 많이 떠들었으니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안다. 물론 내가 한창 떠들 때는 컬리 기업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였고, 그래서 한동안은 바보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컬리가 나스닥 상장을 준비한다고 하던 그때쯤이 정점이었다.

컬리 말고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아니 누가 투자한다고 하면 애써 한번 말려는 보는 회사들이 몇 있다. 다 비슷한 케이스들이다. 우리가 벤처에 투자하는 이유로부터 동떨어진 회사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왜 벤처기업에 투자할까. 왜 이익도 내지 못하는, 아니 이익은커녕 간혹은 매출조차 없는 초기기업에 수십억, 수백억 밸류를 인정해가며 멀쩡한 생돈을 밀어넣는 걸까. 여러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나는 벤처기업이 장기간 큰 폭의 매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그리고 이 큰 폭의 매출 성장이 영업레버리지나 규모의 경제를 통해 더 큰 폭의, 폭발적인 이익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그렇게 되고 나면 지금 내가 벌벌 떨며 몇번이나 다시 되새긴 수백억 밸류쯤이야 이 회사가 한 해 버는 이익만도 못하게 될 것이고, 그 시점의 밸류는 지금과는 한참 다를 것이라고 기대해서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가 맞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않은 투자를 너무 많이 본다. 물론 다 똑똑한 사람들이니 제각각의 생각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투자들이 있다. 그런 회사들이 있다.

위에서 당연한 얘기라고 말한 기대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생각해 보자.

먼저, 매출이 장기간 큰 폭으로 성장해야 한다. 이를 분해해 보면 매출이 1)큰 폭으로 성장해야 하고, 2)그러한 성장세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안 되면 애초에 저 사이클은 시동조차 걸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매출의 성장성이 저조하거나 매출 성장의 한계가 보이는 회사에 투자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좀 이해하기 어렵다. 일전에 기업의 성장이 왜 멈추는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m.blog.naver.com/kalay1/222721167107)

그 글에서 다룬 성장의 정체 지점이 너무 가까이 있는 회사는 적합한 '벤처투자' 대상이 되기 어렵다. 우리가 지금 성장 멈출거 다 예상하고 EV/EBITDA 5~10배에 투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벤처투자 대상 회사의 성장이 멈추는 지점은 오랜 기간의 대폭 성장이 다 이루어진 뒤, 위에서 말한 사이클이 다 돌고도 남을 시점이 된 뒤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어려운 기업들이 많다.

둘째로, 매출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이익은 더 큰 폭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이익이 안 나오더라도 매출 증가가 이익을 더 크게 증폭시킬 수 있으리라고 예상되어야 한다. 한 단위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구조이거나, 매출 성장에 따라 계단식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서는 이러한 폭발적 이익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는만큼 이익도 그에 발맞추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이 회사에 PSR로 계산한 높은 밸류에이션을 적용해 놓았다는 점이다. 이익이 1년에 2배씩 성장해야 합리화가 가능한 밸류에이션을 때려 놓고 연간 50%의 이익 성장에 만족하면 안 된다. 이건 표현하자면 컨센서스 미달이다. 사업 구조상 폭발적인 이익성장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되었다면 그 밸류를 주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진짜 많다. 도저히 대체불가능한 막대한 인건비가 매출에 Linear하게 따라붙는 회사, 매출 확대를 위해서는 꼬박꼬박 엄청난 수준의 CAPEX나 광고비, 수수료를 집행해야 하는 회사, 아예 이익이 매출의 일정 비중으로 고정되어 매출성장률 = 이익성장률인 회사 등등...이런 회사에 이익이 매년 두 배 세 배씩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의 밸류에이션이 적용될 때가 진짜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벤처투자라고 해서 기업의 이익과, 현금흐름과, DCF와 무관하지 않다. 언젠가는 이 밸류에 걸맞는 이익을 뽑아낼 회사를 남들보다 일찍 발굴하여, 그 시간과 리스크에 상응하는 수익을 달성하는게 벤처투자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벤처투자도 성숙된 기업 투자와 그 기본 골격에서는 다르지 않다. 기업의 이익 사이클 앞단에 있어서 더 많은 리스크에 노출될 뿐이다. 결국 본질은 회사가 창출해낼 수 있는 이익, 만들어낼 수 있는 돈에 있다. 벤처투자란 언젠가 먼 훗날에 만들어낼 돈에 지금 배팅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Stage와는 완전히 유리된, 벤처투자만의 독립된 시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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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딜 얘기 하나를 듣고 술한잔 하고 쓴 거라 중언부언한 감이 있음. 한국 시장을 완벽히 장악하고 이익률이 지금의 3배까지 올라가도 지금 밸류 기준 시점의 예상 PER이 20이 넘게 모델링되는 회사. 해외 진출도 안되는 회사가 시장 완전히 다 먹어서 그때부턴 영구성장률 2%나 받으면 감사할 판인데 퍽이나 PER 20을 주겠다...

2.
"10년 뒤에는 시장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말은 장기 Projection 상의 성장률을 리스크를 감안해 할인할 때 쓰는 말이다. 뻔히 눈에 보이는 씰링을 멋대로 뒤로 밀 때 쓰는 말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