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MANA

와디즈를 통한 크라우드 펀딩 참여 후기 : 트렌비

지식과 공부

 꼭 이벤트 때문만은 아니고(물론 이벤트 때문인 것도 사실), 이런 경험이 있었다는 차원에서 적어본다

 1) 참여 동기

 사실 맨 처음 참여한건 투자를 해서 돈을 벌겠다 하는 취지보다 실전 스터디? 같은 느낌이 더 컸다. 회사에서도 중소, 벤처기업 투자를 많이 검토하게 되지만, 그때는 항상 믿을만한 중개인이 있다. IB가 됐든 PE나 VC가 됐든, 회사가 제시하는 자료를 한번 검증하고 걸러서 제공해주는 역할을 누군가가 해 주는 것이다. 애초에 그렇게 한번 걸러진 회사가 우리 앞까지 도착하기도 하고. 물론 그런 중개자들도 우리 앞까지 온 다음에는 어떻게든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좋은 얘기들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나쁜 회사를 가져오거나 회사의 치명적인 나쁜점을 숨기는 경우는 많지 않다. 한번 투자받고나면 당분간은 볼 일 없는 회사와 달리, 중개자들은 앞으로도 다른 딜로 계속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업무 중에 회사로부터 직접 받은 자료만으로 투자를 검토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만들어진 보고서, 준비된 리서치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내려본 경험은 많지만 진짜 맨 처음부터 회사를 분석해본 적은 없는 것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회사 계정과의 이해상충 소지도 없는 연습방법을 찾다보니, 크라우드 펀딩이 눈에 들어왔다.

2) 투자업체 및 투자 아이디어

 나는 이정도 사이즈 기업에 대한 무담보채권은 Risk-Return이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지분투자를 중심으로 검토를 진행했다. 올라오는 투자건을 한 2주 훑다가 눈에 들어온 것이 '트렌비'라는 해외공구 쇼핑몰이었다. 오래돼서 기억이 잘 안 나긴 하는데, 최초의 투자 아이디어는

(1) 해외직구시장의 빠른 성장세, 특히 패션 명품 시장의 높은 직구 수요(세금 문제, 국가간 가격 차이) : 대상회사가 위치한 시장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보이며, 정책적 요인을 제외하고는 이러한 추세가 급변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임

(2)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의 직구를 제약하는 유통채널의 낮은 신뢰성이 문제가 되고 있음 : 대상기업은 단순히 유통을 중개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해외(영국) 법인을 두고 상품을 직접 수령한 뒤 사진을 통하여 검수결과를 소비자에게 제공함으로써 소비자 신뢰를 제고할 수 있음

(3) 명품이라는 소재에 적합한, 브랜드 중심의 인터페이스 및 검수 서비스에 의한 우호적인 리뷰 다수

(4) 대상회사의 빠른 성장세 및 인력의 경험

정도였던 걸로 기억한다.

3) 아이디어의 검증

 일단 검증 과정에서 가장 우려되었던 부분은 사업모델의 훼손 가능성과 너무 높은 발행 Valuation이었다. 하필이면 해외법인이 영국에 있어서 Brexit의 영향을 어떻게 받을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일단 투자 아이디어에 대해 재확인해본 결과, 직구 시장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었다. 명품, 패션 등과 가전제품 등의 영역에서 특히 성장세가 돋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개별 직구 업체의 성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었다. 직구붐에 따라 너무 많은 직구대행 플랫폼이 생겨났고, 배송대행지를 통한 해외 쇼핑몰에서의 직접 구매도 꾸준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사해본 결과 그러한 업체들 중 물품에 대한 검수를 업체에서 직접 진행하고 결과를 소비자에게 제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이는 현지에 법인을 두고 있는 대상회사의 고유한 장점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대상회사는 향후 명품 외 가전이나 대중 브랜드의 직구 서비스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해당 시장은 상술한 이유로 인해 과도하게 포화되어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회사가 제시한 사업계획 중 사업확장에 따른 사업의 개선은 가능성이 높지 않거나 진출위험 대비 성과가 불투명하다고 보아 적정 Valuation 산정시에는 제외해야 한다고 보았다. 회사의 Core 비즈니스는 높은 신뢰도를 바탕으로 고가품 거래 수요를 유인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모든 물건을 다 거래하고 있는 큐텐 등의 플랫폼과 Value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유사 사업의 VC 펀딩이나 M&A 사례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사업 모델이 뚜렷하고 국내법인이 이익을 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내할 수 있는 Valuation이라고 판단했다. 이익이 발생하는 회사니 보통주보다는 RCPS 같은 걸 인수할 수 있었으면 좀 더 편했을텐데 조건은 내가 정하는게 아니니까...

 SKU면에서 생각보다 더 다양한 브랜드의 상품이 깔려 있었는데, 모든 브랜드에 대해 재고를 보유하거나 별도의 제휴관계를 통해 입점시킨 것은 아니었고 단순히 현지에서 판매되는 상품의 프로모션을 중개 형태로 제공하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SKU는 안정적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다만, MD들이 직접 소싱해야 하는 구조상 적극적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품목의 빠른 증가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대상회사는 파트너 시스템을 통해 판매자와 직접 협약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투자 진행 당시 파트너 시스템 오픈을 위한 준비는 많이 진행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이를 통해 품목을 대폭 확장하게 되면 매출 확대의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이미 이익을 달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매출 증가는 추가적인 이익 달성과 R&D 역량 제고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업체가 제시한 점유율 확대폭을 그대로 인정하였다.

 리뷰를 거의 100개는 본 것 같은데, 업체와 관계가 있어보이는 리뷰를 제외하고 보면 일관되게 타 배송대행보다 빠른 배송 시간, 높은 신뢰도 등이 장점으로 꼽혔다. 반면 다른 배송대행 플랫폼보다 비싸다는 의견도 종종 보였는데 실제 검색해본 결과는 크게 차이나지는 않았다. 리뷰 검색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배송받은 상품에 재봉불량 등이 있었다는 비판 리뷰도 가끔 있었지만 업체의 핵심역량인 브랜드/품질 검수의 신뢰성을 훼손할 정도의 빈도는 아닌 것 같았다.

 브렉시트 관련해서는 좀 복잡했는데, 중요하게 본 것은 대상회사가 EU 국가로부터 해당 상품을 '무역'의 형태로 사오지는 않는다는 점이었다. 대상회사는 EU 국가 내 브랜드들이 자체 프로모션을 진행하거나, 한국보다 상품을 싸게 팔 때 이를 상품의 형태로 '소비자로서' 구입하여 배송하는 업무를 중개해주는 사업자이므로 일단은 소비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단하였다. 현지에 가서 직접 구매하는 데 비용이 더 들 수는 있겠으나, 이것이 사업의 본질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주절주절 적은 것 같아 여기서 줄이지만, 이외에도 여러가지 고민을 해 보고 리서치도 해 본 결과를 적당히 내 개인적으로 만들어놓은 모델에 넣고 이리저리 조정해 보니 사업의 성장성 대비 위험은 그렇게 높지 않다고 판단하여 투자를 결정하였다. 사실 회사일 하면서 같이 진행하기가 아주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리서치를 해도 뚜렷하게 답을 낼 수 없는 부분은 어느 정도 감으로 메워넣기도 했었던 것 같다.

4) 관리 및 Exit

 사실 관리랄 건 없었다. 결산총회 할때 갔어야 됐는데 그날 하필 회사에 일이 생겨서 못갔고...

 그러던 중 투자하고 한 1년여만에 국내 VC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발행된 구주를 투자당시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한다는 공지가 떴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투자 업체에 어떤 큰 변화가 있거나, 투자 아이디어가 훼손된 부분은 없었지만 이럴 때 세컨더리로 Exit 못하면 나중에 M&A될 때나, 상장할 때나 Exit할 기회가 올텐데 그정도 장기간의 판단에 대한 확신도 크게 없었고, 적어도 제시받은 Value가 이 기업의 '지금의' 가치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라고 판단하여 매각을 결정하였다.

 그리고 최초 투자금에 0 하나만 더 붙일걸 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였다.

 앞으로도 종종 이렇게 연습 한번 해볼 생각인데, 그래도 첫 사례가 좋은 Exit으로 끝나 다행이다. 몇번 더 해봐야 이게 단순히 운이었던 건지 아니면 내가 그래도 잘 본 부분이 있는지 알게 되겠지만 말이다.

190513_이번 딜 보면서 반성할 점

지식과 공부/사모시장 이야기
1) 펀드 Term, 구조에 대해 소홀하게 검토
 - 만기가 어떻게 정의되어 있고 연장은 어떻게 되는지, Vehicle 위치는 어디인지, EUR와 USD Sleeve는 어떤 구조로 되어있는지, 공동투자자는 누가 있고 LPA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이런 부분도 사업 내용만큼 중요한 부분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

2) 연락해서 물어볼 일 있으면 그냥 편하게 전화해서 물어보기
  - 너무 어려워하지 말기

3) 협의, 논의 등으로 에두르는 건 그냥 없는 거라고 생각하기
  - 계약서에 명문상 어떻게 되어있는지를 확인하는게 최우선이고, 임의적인 방법으로 보완한다고 하는 건 안하면 어쩌냐는 논리에 디펜스가 안됨

4) 기업이 상장시장에서 Value 받을 때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 영향 미치는지 고려 필요
  - 주된 Exit 루트가 IPO면 시장의 센티먼트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

5) 정성적인 사업내용 이전에 F/S부터 시작하고 F/S의 특이점을 사업분석을 통해 확인하는 것이 더 안정적인 접근방법일 듯
  - 사업 내용 이전에 계약서와 F/S부터 검토 시작해야 편견이나 선호도 없이 검토 가능할듯. CDD부터 던져주거나 하이라이트부터 던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

6) 100% 확실해야 말하기. 상식적으로 그렇지 않겠나 싶어도 비상식적인 상황일 수 있음을 생각

7) 키가 되는 중요한 숫자들은 외워놓아야 이상한 점이 눈에 빨리 보임

8) Fx와 세금에 좀 더 신경쓰기. 자산 선택으로 1% 더 먹으려면 힘든데 Fx랑 세금이 저만큼 영향 미침

Man vs System

사는 이야기
어릴때는 조직이란 마땅히 제도와 규율로 굴러가야 하고, 개인의 선한 특질이나 선의, 능력 등에 의해서 좌우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요소의 존재여부는 완전 임의로 결정되기 때문에, 이런 요소에 의존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조직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제도니 시스템이니 하는 것보다 조직을 이루는 사람 개개인의 선의와 능력이 더 중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개인의 특질에 의존하는 것이 조직에게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것은 분명히 리스크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리스크다. 사람의 악의와 무능은 어떤 제도와 시스템도 무력화시킨다. 제아무리 훌륭한 시스템으로 조직을 묶어놓더라도 무능한 이들과 악인들은 그야말로 창의적인 방법으로 그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시스템을 파괴하고, 심지어는 조직에 해를 입히는 것으로 바꾸어 내고 만다.

요컨대, 시스템에 의지하든 사람에 의지하든 결국 사람이 모든 걸 결정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 의존하다 무능한 이나 악인을 만나면 망하게 되고,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다 무능한 이나 악인을 만나도 망하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무능한 이, 악인을 조직에 들이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지, '악인도 깰 수 없는' 시스템, '아무리 무능해도 굴러가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할 수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