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AMANA

220530_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이유

지식과 공부

  했제충같은 짓을 좀 하자면...나는 컬리 안티였다. 요새 삐걱거리니까 하는 소리가 아니라, 컬리의 사업 전반기인 몇년전부터 그랬다. 술자리에서 주로 했던 얘기라 인증은 못하지만 그만큼 술자리에서 많이 떠들었으니 내 주위 사람들은 다 안다. 물론 내가 한창 떠들 때는 컬리 기업가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였고, 그래서 한동안은 바보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컬리가 나스닥 상장을 준비한다고 하던 그때쯤이 정점이었다.

컬리 말고도 내가 좋아하지 않는, 아니 누가 투자한다고 하면 애써 한번 말려는 보는 회사들이 몇 있다. 다 비슷한 케이스들이다. 우리가 벤처에 투자하는 이유로부터 동떨어진 회사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왜 벤처기업에 투자할까. 왜 이익도 내지 못하는, 아니 이익은커녕 간혹은 매출조차 없는 초기기업에 수십억, 수백억 밸류를 인정해가며 멀쩡한 생돈을 밀어넣는 걸까. 여러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내 생각은 이렇다.

나는 벤처기업이 장기간 큰 폭의 매출 성장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서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그리고 이 큰 폭의 매출 성장이 영업레버리지나 규모의 경제를 통해 더 큰 폭의, 폭발적인 이익 성장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해서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그렇게 되고 나면 지금 내가 벌벌 떨며 몇번이나 다시 되새긴 수백억 밸류쯤이야 이 회사가 한 해 버는 이익만도 못하게 될 것이고, 그 시점의 밸류는 지금과는 한참 다를 것이라고 기대해서 벤처기업에 투자한다.

당연한 얘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당연한 얘기가 맞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지 않은 투자를 너무 많이 본다. 물론 다 똑똑한 사람들이니 제각각의 생각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이해하기 어려운 투자들이 있다. 그런 회사들이 있다.

위에서 당연한 얘기라고 말한 기대들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몇 단계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생각해 보자.

먼저, 매출이 장기간 큰 폭으로 성장해야 한다. 이를 분해해 보면 매출이 1)큰 폭으로 성장해야 하고, 2)그러한 성장세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안 되면 애초에 저 사이클은 시동조차 걸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매출의 성장성이 저조하거나 매출 성장의 한계가 보이는 회사에 투자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좀 이해하기 어렵다. 일전에 기업의 성장이 왜 멈추는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m.blog.naver.com/kalay1/222721167107)

그 글에서 다룬 성장의 정체 지점이 너무 가까이 있는 회사는 적합한 '벤처투자' 대상이 되기 어렵다. 우리가 지금 성장 멈출거 다 예상하고 EV/EBITDA 5~10배에 투자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벤처투자 대상 회사의 성장이 멈추는 지점은 오랜 기간의 대폭 성장이 다 이루어진 뒤, 위에서 말한 사이클이 다 돌고도 남을 시점이 된 뒤여야 한다. 그러나 그러기 어려운 기업들이 많다.

둘째로, 매출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이익은 더 큰 폭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이익이 안 나오더라도 매출 증가가 이익을 더 크게 증폭시킬 수 있으리라고 예상되어야 한다. 한 단위의 매출을 발생시키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끊임없이 증가하는 구조이거나, 매출 성장에 따라 계단식으로 막대한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서는 이러한 폭발적 이익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매출이 빠르게 성장하는만큼 이익도 그에 발맞추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러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이 회사에 PSR로 계산한 높은 밸류에이션을 적용해 놓았다는 점이다. 이익이 1년에 2배씩 성장해야 합리화가 가능한 밸류에이션을 때려 놓고 연간 50%의 이익 성장에 만족하면 안 된다. 이건 표현하자면 컨센서스 미달이다. 사업 구조상 폭발적인 이익성장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견되었다면 그 밸류를 주면 안 되는 거다.

그런데 이런 경우가 진짜 많다. 도저히 대체불가능한 막대한 인건비가 매출에 Linear하게 따라붙는 회사, 매출 확대를 위해서는 꼬박꼬박 엄청난 수준의 CAPEX나 광고비, 수수료를 집행해야 하는 회사, 아예 이익이 매출의 일정 비중으로 고정되어 매출성장률 = 이익성장률인 회사 등등...이런 회사에 이익이 매년 두 배 세 배씩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의 밸류에이션이 적용될 때가 진짜 많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벤처투자라고 해서 기업의 이익과, 현금흐름과, DCF와 무관하지 않다. 언젠가는 이 밸류에 걸맞는 이익을 뽑아낼 회사를 남들보다 일찍 발굴하여, 그 시간과 리스크에 상응하는 수익을 달성하는게 벤처투자의 본질이라고 본다. 그렇게 생각하면, 벤처투자도 성숙된 기업 투자와 그 기본 골격에서는 다르지 않다. 기업의 이익 사이클 앞단에 있어서 더 많은 리스크에 노출될 뿐이다. 결국 본질은 회사가 창출해낼 수 있는 이익, 만들어낼 수 있는 돈에 있다. 벤처투자란 언젠가 먼 훗날에 만들어낼 돈에 지금 배팅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다른 Stage와는 완전히 유리된, 벤처투자만의 독립된 시장이 있는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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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딜 얘기 하나를 듣고 술한잔 하고 쓴 거라 중언부언한 감이 있음. 한국 시장을 완벽히 장악하고 이익률이 지금의 3배까지 올라가도 지금 밸류 기준 시점의 예상 PER이 20이 넘게 모델링되는 회사. 해외 진출도 안되는 회사가 시장 완전히 다 먹어서 그때부턴 영구성장률 2%나 받으면 감사할 판인데 퍽이나 PER 20을 주겠다...

2.
"10년 뒤에는 시장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말은 장기 Projection 상의 성장률을 리스크를 감안해 할인할 때 쓰는 말이다. 뻔히 눈에 보이는 씰링을 멋대로 뒤로 밀 때 쓰는 말이 아니라...